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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8>예스러움과 세련미 공존 부암동

[서울신문]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석파랑 정문 앞에서 참가자들이 해설을 듣고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석파랑 정문 앞에서 참가자들이 해설을 듣고 있다.

한양도성 순성이 도성 안팎으로 확대될 무렵 많은 사람들이 찾은 곳이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이다. 인왕산 북벽 기슭 청계동천과 북악산 북벽 기슭 백석동천은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꿈꾼 곳이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어지러운 세상 잠시 잊고 꿈꾸듯 무릉도원을 걷는다.에프엑스시티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상명대 앞 삼거리에서 내렸다. 버스 정류장 앞 건널목을 지나면 석파랑(石坡廊)이 나온다. 대원군 이하응의 호 ‘석파’를 딴 이름이다. 1958년 소전 손재형이 석파정에 있던 일곱채 건물 중에서 별당 석파랑만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 1819년 대과에 급제한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 유당 김노경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에 나선다. 1820년 1월 추사는 보소재 석묵서루에서 담계 옹방강(1733~1818)을 만난다. 스승 초정 박제가가 세 차례 연행하면서 옹방강과 교류했던 것에 비춰 보면 아마도 초정이 만나라고 권고한 듯하다.

부암동 백사실 별서 터는 서울 시내에 남은 보물 같은 유적이다. 본래 연객 허필이 살던 곳에 추사 김정희의 생부 김노경이 집을 지었고, 연암 박지원이 소유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별서 터에 띄엄띄엄 앉아 해설을 듣고 있다.
부암동 백사실 별서 터는 서울 시내에 남은 보물 같은 유적이다. 본래 연객 허필이 살던 곳에 추사 김정희의 생부 김노경이 집을 지었고, 연암 박지원이 소유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별서 터에 띄엄띄엄 앉아 해설을 듣고 있다.

추사는 청나라 금석학의 대가 담계 옹방강을 깊이 흠모하면서 당호를 보담재(寶覃齋)라고 짓는다. 전국에 있는 비석을 탁본해 첩을 만든다. 원형을 간직한 우리나라와 중국 비석 글씨를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산에 있는 비석이 진흥왕순수비라는 사실을 밝힌다. 스승 옹방강은 한나라 훈고학과 송나라 성리학을 서로 보완해 경학을 한다.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이다. 추사는 스승을 좇아 성리학과 청나라 고증학을 절충함으로써 북학의 틀을 확고히 하고 개화를 준비한다. 그러나 또 한 번 북청 유배길에 오르면서 모든 게 산산이 부서진다. 대신 유배지에서 붓 천 자루를 몽당붓을 만들고 벼루를 열 개나 밑창 내고서 추사체를 완성한다.

추사를 찾아 나룻배를 타고 서귀포까지 온 사람이 있다. 제자 이상적이다. 제자 이상적의 절개에 감복한 추사는 자신의 심경을 한 장 그림으로 표현한다. ‘세한도’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집은 김흥근의 부암동 별서 삼계동산정 별당 월천정(三溪洞山亭 別堂 月泉亭), 즉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의 석파정 석파랑(石坡亭 石坡廊)이다. 송백은 석파정 정원수다. 추사와 이상적이다.

서울미래유산인 석파랑의 주인 소전 손재형은 22세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이어 7회나 입선 또는 특선을 한다. 1933년부터 선전 심사위원 연 3회, 광복 후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연 8회 역임한다.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냈다. 1944년 미군의 공습이 연일 계속되는 도쿄로 가서 세한도를 되찾아 온다. 세한도에 등장하는 석파정 별당을 옮겨 짓고 석파랑이라 부른다.

세검정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다산 정약용은 세검정 풍광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세검정을 둘러보는 참가자들. 다산 정약용은 세검정 풍광은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석파랑에서 다시 도로를 건너 직진하면 도롯가에 멋진 정자, 세검정이 나타난다. 광해군은 어머니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시킨다. 또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을 강화로 유배 보내고 사실상 살해한다. 폐모살제(廢母殺第)한 광해의 패륜을 응징하기 위해 1623년 인조반정을 단행한다. 김류·이귀·심기원·김경징 등 반정공신들은 세검정에 모여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진다.파워볼엔트리

반정군은 모화관에서 심기원의 병사와 합류한 후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을 점령한다. 광해군은 역모의 기미를 알았지만 적극 대처하지 않았는데 이는 김개시라는 상궁 때문이다. 실록은 상궁 김개시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김상궁은 이름이 개시(介屎)로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춘궁의 옛 시녀로서 왕비를 통하여 나아가 잠자리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인하여 비방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다.” 실록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자의 용모와 잠자리 비방 등을 직접 거론한다. 김개시는 광해의 총애를 받는다. 그런데도 그냥 상궁으로 머물렀다.

세검정에는 남인 다산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 있다. 목멱산(남산) 아래 명례방(명동) 집에서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1791년 신해년 여름 어느 날 다산이 말을 타고 창의문 밖으로 냅다 달린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세검정에 올라 자리를 벌이니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 산골 물이 사납게 들이친다. 그날 다산이 세검정에서 벗들과 노닐었던 기록, ‘유세검정기’에서 세검정을 이렇게 즐기라고 일러 준다. “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뿐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 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 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 밖으로 나서기를 내켜 하지 않는다.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수그러들어 버린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 자가 드물다.”

세검정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별서 터가 나온다. 그야말로 서울 시내에 있는 보물이다. 별서 터에는 사랑채와 안채 등 두 채 집터와 연못 두 개와 정자 한 개 그리고 우물 등이 있다. 처음 별서정원을 가꾼 사람은 연객 허필(1709~1768)이다. 표암 강세황과 절친했다. 두 사람 다 시서화에 능했기 때문에 연객이 그린 그림에 표암이 시를 짓기도 하고 표암이 그린 그림에 연객이 찬하기도 했다. 연객 허필이 이곳에 별서를 조영했을 때는 그저 소박한 띠집이었다. 사랑채와 안채, 연못과 정자를 조영한 사람은 추사의 생부 유당 김노경이다. 연객과 유당에 이어 이곳 백석동천에 별장을 소유했던 사람은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아들 박종채(1780~1835)다. 한 가지 궁금하다. 1935년까지도 멀쩡하던 연못 정자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나?

백사실 별서 옆 백석동천 각자바위의 백석은 백악산의 다른 이름인 백석산에서 따왔다. 신선 백석생이 살던 무릉도원이다.
백사실 별서 옆 백석동천 각자바위의 백석은 백악산의 다른 이름인 백석산에서 따왔다. 신선 백석생이 살던 무릉도원이다.

별서 터에서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길가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 각자한 바위가 나온다. 백석동천에서 말하는 백석은 열선도(列仙圖)에 등장하는 신선 백석생(白石生)이 들어가 살았던 백석산(白石山)이다. 백석생은 백석을 삶아 식량 삼아 먹으면서 백석산에서 살았다. 하늘로 오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하늘 위 신들의 세계라고 해서 인간세계보다 반드시 즐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돼지 살 돈도 없었던 백석생은 양을 사서 십여 년 길렀다. 많은 돈을 벌어 내단약 금즙(金液)을 사서 먹고 백석산으로 들어갔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오래 사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노불사의 신선이 노니는 동천복지(洞天福地)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동천이라 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다고 믿었던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를 일컬어 동천복지라 한다. 일반적으로 속세와 격리된 산속 살기 좋은 땅을 뜻한다. 백석과 동천을 서로 엮으면, 백석산 깊은 곳 백석생이 사는 동천복지와 같은 별천지가 된다. 그야말로 신선이 노니는 도교적 이상향, 백석동천이 바로 이곳이다.

백석동천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피프린스’를 촬영한 카페가 나온다. 북악산 성곽과 인왕산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 골목길 아래로 돌아들면 환기미술관이다. 김환기는 1913년 2월 27일 전남 신안군 기좌도에서 태어났다. 김환기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광복부터 한국전쟁까지다. 1948년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한다. 서울대 미술학부를 만든 동양미술사학자 근원 김용준과 교유하면서 우리 고미술과 한국미를 새롭게 발견한다. 산 중턱에 걸린 달, 길게 날아가는 학, 매화 긴 가지 등 한결같이 예서를 방불케 한다. 파리 시기를 통해 오히려 한국미를 확신한다. 김환기에게는 기좌도도, 서울도, 파리도 작았다.

환기미술관은 부암동의 별이다. 김광섭의 시구를 제목으로 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환기미술관은 부암동의 별이다. 김광섭의 시구를 제목으로 단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전환점은 1963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 시기다. 파리가 아닌 뉴욕에서 정점을 찍는다. 1969년 김환기는 뉴욕에서 절친 김광섭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실의에 빠진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주제로 마지막 시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전면점화(全面點畵)를 그린다. 환기미술관에서 김환기 그림을 다시 본다. 김환기의 점화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가득 메운 고구려 사람들이 입은 땡땡이 옷이다. 도교사원 운주사를 가득 메운 석탑과 석상이다. 김광섭의 시를 가득 메운 별이다. 김환기, 그림, 별, 김광섭 그리고 시!

한양성곽 4소문 중 하나로 북소문 창의문을 만든 것은 1396년이다. 임진왜란 때 타고 없는 문루를 1741년 중수하기는 했으나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원래 위치를 지키는 문이다. 사람들이 창의문을 기억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이 문을 지나 창덕궁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광해군 15년 1623년 세검정에서 결의를 다진 반정군과 능양군(훗날 인조)의 친정군이 합류해 창의문을 깨고 창덕궁으로 들어간다. 광해는 역모의 상소를 읽었지만 무시했다. 반정군이 창의문 밖에 모여 있다는 밀고까지 받았지만 반정군에 합세한 훈련대장 이흥립의 소극적인 대처로 이 또한 무효였다.

어머니 인목왕후를 폐위하고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게 반정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광해의 가장 큰 실책은 ‘왕기(王氣)가 있다’는 이유로 동생 정원군(인조의 친부)의 아들 능창군(인조의 동생)을 유배 보낸 것이다. 유배지 강화에서 능창군은 목매 자결한다. 결국 광해가 능창군을 죽인 셈이다. 능창군의 형 능양군이 가만히 있다면 그게 패륜이다. 둘째는 이곳의 유명한 치킨집과 연관시켜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 때문이다. 분명 봉황인데 사람들은 자꾸만 닭이라고 한다. 봉황 모가지를 닭 모가지처럼 그리기도 했다. 창의문 밖에서 바라본 부암동 형상이 마치 지네와 같아 지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네의 천적인 닭을 길렀다. 그래서 부암동에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한 치킨집이 많다.

글 최석호 한국레저경영연구소 소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MBC 뉴스 화면 캡처
MBC 뉴스 화면 캡처

고(故) 최현숙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선수가 감독과 동료 선수의 가혹 행위로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최 선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또 다른 선수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엔 광주광역시 체육회의 우슈팀이다.

MBC는 전국체전 우슈 고등부 우승을 차지했던 유망주 A선수가 졸업 후 광주광역시 체육회에 입단 후 선배 두 명의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려왔다고 20일 보도했다. 피해자인 A선수는 매체에 “가위, 칼, 이런 것들, 도 캔 뚜껑 이런 날카로운 것을 갖고 허벅지를 피날 정도로 세게 누르고 있었다”며 “숙소 주방 칼을 들고 ‘너 진짜 내 말 안 들으면 찌를 수도 있다’며 내 앞까지 와 위협하니까 너무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2년 가까이 죽을 만큼 수치스러웠던 성추행을 해왔다고 A선수는 주장했다. 이런 가혹행위가 계속됐지만 억대 연봉을 받는 팀 실세였던 데다 그의 아버지가 당시 광주광역시 우슈협회 이사까지 맡고 있어 오히려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A선수는 “어떻게든 신고한다 하면 너 앞으로 진짜 운동 못 하게 할 거다. 너 평생 우슈에 발도 못 딛게 할 거다. 이러면서…”라고 주장했다. 결국, A선수는 지난해 11월,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우수협회에 진정서를 냈다. 그러나 징계 수위는 고작 대회 출전 3회 정지였다. 이마저도 사유가 ‘폭행’이 아닌 ‘품위손상’이었다.

이에 대해 광주광역시 우슈협회 관계자는 MBC에 “너희끼리 다툼이 없냐고 항상 물어봤다. 갈 때마다…”라며 “얘가 항상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같은 조그마한 협회에서 뭔 징계를 하겠냐. 피해자가 주장만 했을 뿐이고 정황증거를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선수는 가해자들에게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A선수는 “형한테 사과받고 이제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더니 ‘미쳤냐. 나는 당했으면 너 때보다 더 당했지 너는 당한 거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절대 사과 못 한다…”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우슈협회는 A선수 호소에 진상 조사나 처벌보다 보호자를 통한 합의 종용에 나섰다.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의 부모는 증언에 나선 동료를 회유하거나 협박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 우슈협회 관계자는 MBC에 “뚜렷한 증거가 나온 게 없다. 설령 그 애가 아무리 미운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어른들이 절충해 좋은 쪽으로 합의를 내보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협회 관계자는 가해 선수들만 두둔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우슈협회 관계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애들은 피해가 엄청나다”며 “그것도 우리가 알아야 된다. 어떻게 보면 운동인으로서 꽃을 피울 때 이꼴이 터져서 선수 생활을 못 하게 된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협회의 솜방망이 처벌에 실망한 A선수는 결국 지난 1월 두 선수를 고소했고 경찰은 폭행과 폭언 행위를 입증하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폭행 사실을 부인했으며 2차 가해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해자의 아버지가 직접 집으로 찾아오는 것은 물론 현역 선수 신분을 감수하고 참고인으로 나섰던 동료에겐 증언을 압박했다고 A선수는 주장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의 아버지는 MBC에 “우리 아들이 제일 큰 피해자다”라며 “전부 허위다. 광주시 우슈협회에서 진정 낸 거 하고 광주시체육회에 진정 낸 거 하고 광주서부경찰서에 고소내용이 다 다르다”고 반박했다. 가해 아버지와 동료 선수가 나눈 통화 녹취록에도 증언에 나선 동료선수를 협박과 회유한 정황이 담겼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가해 아버지는 “재판까지 가야 하는 판국인데 자네가 가서 거짓말탐지기하고 혹시나 위증했으면은 위증 처벌도 받을 자신이 있지?”라고 말했다. 이에 동료 선수는 “상관없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 아버지는 “사건에 쉽게 휘말리는 게 아니다. 니네가 휘말려서 좋은 게 뭐 있나. 그냥 모른다고 해버리면 끝인데”라고 했다.

A선수는 “잘 처리되지 않을 것 같다”고 낙담했다. 폭행 증거는 있지만 성추행 증거는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 중 한 명은 여전히 소속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며 나머지 한 명도 협회 이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별도의 추가 징계 없이 소속팀을 떠난 상태라 언제든 우슈계에 복귀가 가능한 상황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그린 숲 버스정류장, 더위 식혀주는 양산 역할”

그린 숲 버스정류장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린 숲 버스정류장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전=연합뉴스) 유의주 기자 = 지붕·벽면과 주변을 풀과 나무로 가꾼 ‘그린 숲’ 버스정류장이 여름철 폭염에 더위를 식혀주는 양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21일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바깥에 있다가 지붕과 벽면을 풀로 덮은 버스정류장 아래로 들어가면 얼굴 표면 온도가 1.9도 낮아졌다.

옆에 가로수까지 심은 정류장에서는 0.9도가 더 떨어져 2.8도 차이를 보였다.

반면 나무가 없는 일반 버스정류장 아래에서는 밖에 있을 때보다 0.7도 정도밖에 얼굴 표면 온도가 낮아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를 한낮(정오∼오후 4시) 땡볕에 노출한 직후와 각각의 버스정류장에서 10분 휴식 후 얼굴 표면 온도를 열화상 카메라로 10회씩 측정해 비교했다.

이 같은 차이는 나무와 풀이 잎의 증산작용으로 열기를 식히고, 태양 직사광선을 막는 동시에 지면 반사열을 줄여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재형 국립산림과학원 도시숲연구센터장은 “그린 숲 버스정류장 사업은 경관만을 위한 관리에서 벗어나 교목과 관목 구조로 복층 숲을 조성하고, 지붕과 벽면의 녹화를 활성화하는 등 입체적인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OSEN=김수형 기자]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이 학창시절 절친인 싸이에게 자격지심이 있던 일화를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20일 방송된 MBN 예능 ‘전국민 드루와’에서 청담동 호루라기가 출연했다. 

점장님으로 코요태 리더 김종민이 출격했다. 김종민은 차단기 3개를 모두 올려 합격한 사람이 1등 자리에 올라간다면서 다음 참가자가 더 잘하면 1등은 바뀔 수 있다며 일명 ‘도장깨기’라 소개했다. 

이수근은 300만원 생활지원금까지 준비했다고 전하면서 차단기가 올라가기만 해도 생활지원금 10만원 선물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이혼 안 하러온 경찰관 부부가 등장했다. 배일호의 ‘오뚝이 인생’이란 노래를 준비, 오픈하자마자 첫 합격하며 ‘드루왕’ 왕관 후보에 올랐다. 

다음은 클론의 노래를 1인 3역으로 열창한 한 사연의 주인공이 등장했다. 모두 뜨겁게 호응했고 덕분에 ‘드루왕’ 자리도 체인지 됐다. 김종민은 “흥이 많았다, 호흡이 많았다는 것이 가산점”이라며 이유를 전했다. 
첫번째 후보였던 경찰관이 왕관을 전달, 10만원 생활 지원금을 받았다. 

다음은 인싸로 활동하는 ‘라마’란 이름으로 사연자가 등장했다. 그는 동물 라마 복장으로 등장하면서 비의 ‘깡’ 음악에 맞춰 무대를 펼쳤다. 하지만 우승에 미치지 못하는 춤과 노래실력으로 결국 탈락했다. 

다음은 ‘호각’이라는 닉네임이 등장했다. 김종민은 “누군지 알것 같아, 감이왔다”면서 청담동 호루라기일 것이라 추측했다. 

게다가 싸이의 ‘챔피언’을 선곡하자 MC들은 “진짜 느낌이 온다”며 놀라워했다. 알고보니 싸이와 찰떡궁함 콤비로 활약한 바 있던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이었다. MC들은 “좀 푸근해졌다, 살이 많이 쪘다”고 농담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청담동 호루라기 이진성은 절친 싸이에 대한 얘기도 꺼냈다. 그는 “친한 동생 싸이의 부탁으로 춤추게 된 계기가 됐다”면서 지금은 세계적 월드스타된 싸이가 불편하다고 했다. 

이진성은 “사실 불편한게 싸이는, 예전에 안무 짜달라고 해서 짜주고 하면 어느날 그렇게 자기가 짓게 되더라, 나중에 욕하고 다녔다”면서 “잘나가는 싸이를 보니 좀 불편해, ‘강남 스타일’로 동네에서 걔 노래가 나오니 더 싫더라”고 운을 뗐다. 

이진성은 “시간이 지나니 자격지심이더라, 싸이와 초중고 1년 선후배 사이”라면서 “모든 걸 터넣고 진실로 대화해, 싸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더 돈독한 사이가 됐다”며 비화를 전했다. 그러면서 싸이의 ‘챔피언’을 열창, 모두 “활동 열심히 해서 자주 보자”며 응원했다. 

사찰 지붕서 소동 [독자 촬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찰 지붕서 소동 [독자 촬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5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사찰의 위패당 등 공사대금 지급을 요구하며 높이 15m 대웅전 지붕 위로 올라가 소동을 벌이고 있다.

21일 인천 부평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께 인천시 부평구 한 사찰에서 5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높이 15m 사찰 대웅전 건물 지붕에 올라갔다.

A씨는 이날 오전 9시 30분 현재도 지붕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농성 중이다.

그는 사찰 인근에 위패당과 종무실을 지었으나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건물 지붕에 올라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그가 추락할 가능성을 우려해 주변에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구급차를 배치한 뒤 지상으로 내려올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계속해 A씨가 내려올 수 있도록 설득 중”이라며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예방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사찰 지붕서 소동 [독자 촬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찰 지붕서 소동 [독자 촬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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